죽은 사람의 집을 경매로 매입하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20회 작성일 24-02-05 21:44

본문

의뢰인은 새 집주인이었습니다. 새 집주인은 신축 빌라 한 채를 공매로 매입했는데, 몇 차례 유찰되어 시세보다 싼값에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진으로만 봤던 부동산을 매입한 후 집이 비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입주 청소를 의뢰하기 위해 집을 들어가려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현관문이 조금 열려져 있었고, 현관의 열쇠 뭉치는 부서져 현관 입구에 놓여있었습니다. 누군가 강제로 문을 따고 들어가 연 것으로 보였습니다.

"조금 열려진 문틈사이로 집 안을 들여다보니 사람이 살고 있는 것처럼 살림살이가 보였습니다."

새집주인은 현관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지만 집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고 하네요.

"뭔가 불길한 예감이 감돌았어요.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사람이 나오지 않는거예요."

집주인은 등에서 식은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밖에서 새 집주인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신호를 보냈으나 도무지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당황한 새집주인은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려 주변 이웃들에게 물으려했지만 빌라에서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시세보다 싸게 공매로 산 집이라도 집 안에 세입자가 살고 있다면 일이 복잡해집니다. 멀쩡히 살고 있는 사람을 당장 쫓아 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더군다나 주거침입으로 신고 당할까 걱정되어 집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고 하네요.
새집주인은 몇 시간째 밖에서 서성이다 하는 수 없이 상황 파악을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살펴보았다고 하네요.

"집 안으로 들어가기 너무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아무리 밖에서 문을 두드려도 사람이 나오지 않으니..."

집 안으로 들어간 집주인은 물건들을 둘러보았습니다.

"물건이 대부분 사용 흔적이 없는 새 것이었어요. 누군가 살았던 흔적은 있었는데 아무도 없는거예요. 우편함에서 고지서를 확인해 봤더니 날짜가 2년 전의 것이었어요. 그동안 집이 비워 있었다는 것이겠죠?"

한 참을 둘러보고 있을 때 밖에서 사람 소리가 들렸고, 새집주인은 인기척에 놀라 재빨리 밖으로 나와 만났다고 합니다. 옆집에 살고 있는 아주머니였습니다. 그는 이웃 아주머니로부터 이 집에 살고 있던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듣게되었습니다.

"충격이었죠. 내가 죽은 사람의 집을 경매 받은 거잖아요."

그제서야 새 집주인은 집안으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물건을 이리 저리 둘러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손을 댈 수 없었습니다.
그는 죽은 사람의 가족들 연락처라도 찾으려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지만, 특별한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밖으로 나온 그는 부동산 등기를 담당했던 법무사에게 이 사실을 알리며 어떻게 해야할 지 상담했더니 이런 경우에는 명도소송을 해야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명도소송을 하더라도 짐이 꾸려져 있어야만 강제집행을 하게 될 텐데, 살던 사람이 세간살이를 그대로 놔 둔 채 갑자기 사라진 탓에 집을 정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그렇다고 새집주인 자신이 스스로 정리할 수도 없으니 이 상황이 너무 난감했다고 합니다. 상속인이 있을 테니 물건을 함부로 치울 수도 없고 자신이 이 유품을 훼손하지 않았음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유품정리를 의뢰했다고 하네요.
 
"죽은 사람의 집을 샀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죠?"

저희는 먼저 현장을 방문해 상황을 파악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웃집을 방문하여 고인과 같이 생활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옆집 아주머니는 고인의 성격과 가족관계, 주변인물에 대해 자신이 아는 대로 우리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이 단계는 유품정리에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절차인 '청취'입니다. 탐문이라고도 합니다.수소문 끝에 알게 된 사실은 전 집주인이 사망한 이후 고인의 작은 아버지가 한차례 방문해 기본서류 등을 챙겨갔는데, 그후로는 다시 찾아오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2년동안 관리비와 공과금이 미납되었지만 관리를 담당하는 주민 대표는 상속인들이 나타나지 않아 정산할 수도 없었다고 합니다. 관리비뿐만 아니라 집은 계속해서 빈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고, 몇차례 유찰되며 경매가 진행되었된 것입니다.

새집주인은 고인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저희는 현장에 도착해 방안을 이리저리 둘러보았고, 냉장고와 옷장의 옷, 식탁위의 고지서를 보며 사망한 사람이 젊은 여성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고인은 삼십대 직장에 다니던 여성이었습니다.
 
한편 새집주인에게는 조금 특별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저에게 딸이 한 명 있었는데 삼십년 전에 죽었습니다. 아마 살아 있었다면 이 여성과 비슷한 나이쯤 될 겁니다."

새 집주인은 삼십여년전 불의의 사고로 자신의 딸을 잃었는데 공교롭게도 현재 자신이 매입한 이 집에 살던 고인과 비슷한 나이였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어린 딸이 생각나 이 집에 남겨진 고인의 물건을 아무렇게나 처리하기 싫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그가 원하는 대로 추모제로 고인의 넋을 기리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 집의 유품을 정성을 다해 정리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마치 제 딸처럼 잘 정리해주고 싶어요."

지금의 상황이 다소 황당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그동안 잊었던 죽은 딸아이 생각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의뢰를 받은 저희도 사전에 상담을 할 때부터 상황파악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저는 새집주인과 함께 집안을 둘러보며 직관적으로 뭔가 심상찮은 기운이 감돌았음을 느꼈습니다.삼십대 여성이 갑자기 사망했고, 게다가 문을 따고 들어와야 하는 급박한 사정이 있었다는 건 특별한 사연이 있었을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방안을 둘러보며 유품을 수습하던 중 대봉투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속에는 병원 정신과 진료기록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 우울증..., 그렇다면 자살...'

저는 고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을 직감했습니다. 마음이 더 무거웠습니다. 병원기록지에는 고인의 성장기록이 비교적 자세히 쓰여 있었습니다.

고인에게는 특별한 가정사가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헤어져 언니는 아빠와 살았고, 둘째였던 고인은 할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할머니가 갑작스레 죽었고, 이후 고인의 아빠는 충격에 빠져 오랜시간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적혀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아빠가 너무 힘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아빠의 죽음 이후 두 자매도 큰 충격에 빠졌으며, 언니도 여러차례 자살 시도를 했고, 자신도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정신과 치료를 꾸준히 받아온 것이었습니다. 진료 기록에는 의사의 소견이 적혀 있었는데 꾸준히 치료한 결과 증세가 많이 호전되고 있고 꾸준히 치료를 요한다고 써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고인은 치료를 받던 도중에 그만 자신을 포기해야만 했을까? 궁금증이 더 했습니다. 유품을 정리해야만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내가 정성껏 유품을 정리해 고인이 우리 딸처럼 영면에 들어가셨으면 좋겠어요." 

새집주인은 여기까지의 내용만으로도 우리에게 정성껏 유품을 정리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우리는 고인이 살던 집에서 한지로 지방을 접었습니다. 그리고 하얀 지방 위에는 새 집주인에게 붓으로 고인의 이름을 적게 했습니다. 계속해서 우리는 고인이 사용하던 밥상위에 초와 향을 준비했고, 그녀가 사용하던 밥그릇에 물을 따라 예를 갖췄습니다. 밥상 옆으로는 참석한 인원 수 만큼 생수병을 놓아 묵념으로 영면한 고인을 깨웠습니다.

"유세차... "

저는 먼저 양 무릎을 바닥에 대고 꿇어 앉아 축문을 읊었습니다. 유족 대표로 가족을 대신해 상주는 새집주인이 맡았습니다. 이웃 주민들께도 추도식을 거행해 고인의 넋을 위로하고 정성스레 유품을 정리하고 있음을 알렸습니다. 그동안 이 사망 사건으로 인해 흉흉한 소문이 무성해 이웃 분들조차 불안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추도식으로 이웃 주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해 드렸습니다.

집 안 거실 한 쪽 가운데에서 상 위에 위패를 모시고, 처음 마주하는 고인에게 모두 인사를 올렸습니다.

"일동 차렷. 일동 묵념."

정식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니라서 술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허락 없이 고인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것에 양해를 구하고, 고인과 같은 마음으로 유품을 대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의식입니다. 일로 모인 사람들과 고인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경건한 마음으로 이 의식을 통해 떠난 분의 의도나 생각을 그대로 따르겠다고 하는 장례의 마지막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유품정리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귀중품 수색에 들어갔습니다. 고인의 집 안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는 각종 서류를 수집했고, 각종 메모와 연락처 명함 등 물건이 놓여있는 상태를 사진으로 남기고 귀중품 박스에 담아 분석에 들어갔습니다. 정리를 시작한지 한 시간 가량 지났을 즈음 고인의 억울한 사연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아! 전세사기....'

고인의 사망 원인은 전세사기로 인한 자살이었습니다.
그녀는 이 집에 들어오기 전 결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달콤한 신혼을 꿈꾸며 전세자금 대출을 받아 신축빌라에 입주하였는데, 안타깝게도 이 계약에 문제가 생겼던 것입니다. 고인은 전세사기를 당한 집을 계약했던 것입니다.

유품을 정리하며 만난 다른 이웃들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신축 빌라 촌인데 이 집뿐 아니라 주변의 신축 빌라에서 전세사기 피해자가 대량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고인은 많은 피해자 가운데 한사람이었고, 자신이 그토록 갈망했던 결혼과 삶의 희망이 사라지자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입니다.
한참 신혼 살림을 준비하던 중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연락을 받은 예비 신랑이 달려와 119로 신고와 함께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갔지만 그녀는 이미 쓰러져 있었다고 하네요. 119에서 고인을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고인은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새집주인과 함께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각종 서류와 진료기록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또 이 힘든 현실을 극복하려 얼마나 안간힘을 썼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만난 이웃들에게서 그녀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친절했는지 그리고 사랑을 나누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 두 예비부부가 이들에게 닥친 사기피해를 극복하려 얼마나 안간힘을 쓰며 노력했지 알 수 있었습니다.

고인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건 아니지만, 너무 아쉬운 선택을 한 그녀가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가엽고, 슬프고 도와주고 싶지만 새집주인과 우리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저 그녀의 유품을 정성스레 분류하고 싸는 것 외에는... 한 사람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이처럼 안타까운 죽음이 다시는 일어 나지 않도록 사기범죄로 인한 자살로 연결된 사건에는 국가가 살인죄에 버금가는 강력한 처벌로 다루어 주길 바랄 뿐입니다. 마침 저에게 중앙일간지 기자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이 사연을 이야기했고 이 사연은 기사가 되었습니다.

유품 정리 후 우리는 고인에게 언니가 한 명 있음을 알게 되었고, 연락처를 어렵게 알아내어 새집주인이 연락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유품 포장이 다 끝나고 새집주인에게 유품정리가 끝났음을 알렸습니다. 고인의 마지막 이사는 이제 새집주인의 결정이 또 하나 남았습니다. 명도소송입니다. 명도소송에는 긴 시간이 걸릴 예정입니다. 만약 명도소송으로 인해 강제 집행으로 이어진다면 고인의 유품은 법원의 창고로 이사할 예정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