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돌아가신 어느 할머니의 유품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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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566회 작성일 24-02-12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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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무척 더웠던 어느 날, 조금 특별한 문의 전화가 왔습니다. 일본에서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셨는데, 도쿄에 있는 고인의 유품을 정리해 한국으로 가져오고 싶다는 겁니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 제주 4·3을 겪은 후 결혼과 동시에 일본으로 건너가 고국을 등지고 살았다고 합니다. 할머니에 대한 사연은 한 잡지사의 기사를 보고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유품은 한국인 최초로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한 영화감독 겸 미술가인 임흥순 작가에 의해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 믿음, 신념, 사랑, 배신, 증오, 공포, 유령' 이란 주제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될 예정이었습니다. 임흥순 작가는 이 할머니를 포함해 할머니 네 분의 삶을 통해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다룰 예정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 돌아가신 이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해 한국으로 가지고 와 미술관에 전시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나는 일본으로 연락해 한국에서의 사정과 전시 계획을 설명했습니다. 일본 키퍼스의 요시다 대표, 도쿄 지점장, 담당자인 사소(佐相),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사람은 온라인으로 구체적인 방법을 논의했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도쿄에서의 유품정리는 현지의 법에 따라야 하기 때문에 일본 키퍼스가 계약하기로 했습니다. 통관과 국립현대미술관까지의 배송 등 한국에서 진행되는 일은 우리가 맡아서 진행했습니다. 일본 현장에서 정리하는 장면과 한국에서의 진행 과정은 실시간으로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거리상으로 발생한 어려운 문제를 기술의 도움으로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임흥순 작가는 할머니의 유품정리와 이동 경로, 그리고 미술관에서의 전시 등 모든 과정을 영상에 담아 미술관에서 할머니의 유품과 함께 전시한 후 한편의 영화로 선보일 예정이었습니다. 도쿄에서 유품이 정리되었고, 유품은 포장 후 배편으로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천항으로 들어온 유품의 통관이 문제였습니다. 유품은 이삿짐이나 중고물품 수입과 달라 이전에 사례가 없었고, 통관절차가 까다로와 어렵게 미술관까지 배송되었습니다.

제주 4·3사건의 당사자인 김동일 할머니. 그녀는 이념 갈등으로 인해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등지고 일본으로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일본에서 살아야 했던 이방인. 언어가 다른 것이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될 수 있지만 자신의 생각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이질적 문화는 차이를 좁힐 수 없었나 봅니다. 일본 현장에서 담당자가 보내온 사진에는 할머니의 유품인 '돼지 인형'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에서 유품을 정리하면 각 가정에 행운을 가져다주는 고양이 인형 마네키네코(招き猫)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마네키네코는 들고 있는 손에 따라 오른손은 금전을, 왼손은 사람을 부른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의 유품에는 마네키네코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한국에서 복을 가져다준다고 전해지는 돼지 모양의 인형을 장식으로 해두었습니다. 나는 이 돼지 인형을 보는 순간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울컥한 마음에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번 작품을 진행하는 데 작가가 예술작품으로 표현한다면 중요한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구분해주는 편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현장에서 입은 유니폼으로 한국과 일본을 구분하였습니다. 창업할 때부터 한국은 일본에서 가져온 보라색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푸른색으로 유니폼이 한 차례 바뀌었습니다. 브랜드는 같지만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고 있는 모습입니다. 유니폼이 다른 의미는 유품정리를 하는 사람들의 목적이나 이유가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한 일종의 장치로 아울러 유품이 가지는 의미도 다른 점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일본에서의 김동일 할머니는 한국에서 건너온 이방인 가운데 한 사람. 그리고 일본 키퍼스 요시다 대표의 생각대로라면 할머니의 남겨진 유품은 다른 사람에게 방해물이 되지 않기 위해 정리하는 물건의 의미로, 유족을 위해 그들을 대신하여 정리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한국으로 보내진 할머니의 유품은 4·3이라는 역사적 사건 당사자의 유품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즉 역사적 사건 속에서 ‘이념’이라는 갈등과 ‘대립’의 상징물로서의 가치를 지닙니다. 이처럼 역사의 당사자로서 유품을 정리하는 행위 또한 ‘유족을 대신’하는 일본과 달리 ‘유족의 한 사람’이 되어 유족과 같은 마음으로 정리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여기에는 당사자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이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유품을 정리하는 행위는 같지만 유품정리에 임하는 자세와 이유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유품과 이삿짐은 같은 물건이지만 분명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면에서 이번 일은 특히 한국의 근현대사를 재조명하려는 유능한 작가가 역사와 개인의 삶을 되돌아보는 프로젝트로 진행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최근 한국의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청자상감모란문합, 수월관음도, 백자동화연화문호, 안익태 지휘봉 등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가 17만 점이지만 63년간 고국으로 돌아온 문화재는 5.9%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가 됐습니다. 많은 사람이 해외 반출 문화재를 반환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아픈 역사의 당사자인 김동일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해 고국으로 들여오는 일은 분명히 문화재 반환만큼이나 의미가 있습니다. 문화를 지키는 것은 앞으로 문화재가 될 것을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작가가 대단할 뿐입니다. 그리고 내가 이 일에 참여해 작가가 표현하려고 하는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 이라는 주제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도록 내 역할이 주어진 것만으로 '유품 정리'는 충분히 사회적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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