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지 못한 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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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53회 작성일 24-02-12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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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년전 가을날 나는 수많은 유품들 속에서 소박하게 살아온 70대초반 한 할머니의 삶을 정리했습니다. 의뢰인은 남매였습니다. 남매의 어머니는 도로변에 위치한 상가형 빌라에 살았습니다.견적을 위해 집 안으로 들어서자 두남매가 저를 환하게 반겼습니다. 한 눈에 봐도 우애가 좋게 보이는 첫인상이라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인사를 하고 집 안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동안 두 사람의 대화가 제 귀에 들렸습니다.

"오빠. 우리 동네로 이사오면 안 돼? 이제 엄마도 없으니 엄마집 근처에 살아도 챙겨줄 사람이 없잖아"

지방에서 온 여동생은 엄마집 근처에 살았던 오빠에게 자신이 사는 동네로 이사 오면 안되겠냐고 말했습니다. 이제 챙겨줄 엄마도 없으니 혼자 있는 오빠가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사망이후 두남매가 더 애틋한 마음이 들었는지 서로를 위하는 생각이 보였습니다.

거실 벽에는 엄마와 아들, 딸 세 명의 가족사진이 걸려있었습니다.

오빠가 눈물을 훔치며 말했습니다.

"어릴 때 아빠가 돌아가셔서 엄마 혼자 우리 두 남매를 키우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두남매는 어릴 때 돌아가신 아빠에 대한 기억이 없었습니다. 유품을 정리하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고인은 남편과 이혼 후 작은 양장점을 하며 혼자 아이 둘을 키웠습니다. 양잠점을 했던 고인의 가게가 최근에는 새옷보다 수선 손님이 많았는지 집안에는 재봉틀과 옷수선에 필요한 재료들이 한쪽 벽면 찬장으로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고인은 손재주가 좋은 탓에 두남매는 부유하지 않지만 부족함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집안에는 정갈하게 정리된 살림살이가 고인의 성격이 얼마나 깔끔했는지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고인이 살아계신다면 강좌를 듣고싶을 만큼 정리가 잘되어있었습니다.

엄마는 이 가정의 가장이자 마음의 안식처였습니다. 하지만 불행히 지병이 비켜가지 못했고 두남매는 엄마가 힘들어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엄마는 우리가 어릴 때부터 밤에 잠을 잘 못주무셨어요. 항상 수면제를 곁에 두고 살았거든요."

여동생은 엄마가 왜 그토록 잠을 뒤척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실내에는 방 두칸과 거실이 하나 있었습니다. 혼자 사는 사람의 살림이라 옷이 좀 많은 것을 빼면 전자제품이나 가구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거공간은 정갈하고 깔끔한 상태였지만 현관문 앞에 있는 작은 창고에는 알 수 없는 물건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한참 두 남매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본 이웃 주민이 한명 찾아왔습니다. 같은 라인의 끝 집에 사는 여성이었는데 고인과 비슷한 또래로 보였습니다. 그녀는 고인과 친분을 과시하며 고인의 물건이 또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웃집 여성을 따라가서 확인해보니 각 층별로 있는 실외의 짜투리 공용공간을 고인이 사용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웃의 말이 사실이라면 다섯개 층을 고인이 사용하고 있었고 이 공간에는 수많은 물건들이 꽉꽉 채워져 있었습니다. 물건은 이삿짐을 쑤셔넣은 듯 활용하기도 힘들어 보였습니다. 저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왜 물건을 밖에다 숨겨놓듯 채워 놓았을까?'

고인의 집 내부에 있는 물건과는 종류도 다르고 놓여있는 상태도 달랐습니다. 실외에 있는 물건만 본다면 소유욕이 강한 성향이, 그녀가 사소한 것조차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일종의 저장강박 같은 느낌이었는데 단순한 소유욕은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는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습니다. 두 남매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미소가 가득했던 남매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습니다. 각층의 공용공간의 폐기 처리를 포함해 어떤 업체가 작업을 담당할 것인가 일정을 파악해 견적을 마치고, 계약서에 싸인으로 계약을 했습니다. 정리를 시작하는 날 바쁜 업무로 현장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유족들은 화상 전화를 통해 마음을 전해왔습니다.

'주변 이웃 분들에게 공용 공간에 대한 민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간단한 추도 절차를 마쳤고 먼저 귀중품을 수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색 도중 서랍장 위에 놓인 단지 안에서 남자 손가방이 하나 나왔습니다. 그 가방에는 사진과 서류가 꽉 차있었습니다. 직감적으로 고인이 뭔가 중요한 서류를 보관하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가방을 열어 보니 고인이 공개하지 않았으면 하는 중요한 서류와 사진 뭉치가 발견되었습니다. 사진은 두 남매를 닮은 남자와 여자의 사진이었습니다. 낡은 사진에는 첫인상에서 보았던 두남매의 미소가 보였고 두사람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사진뭉치와 함께 낡은 서류봉투가 하나 나왔는데 봉투를 열어보니 법원 직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이혼 소장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두남매도 몰랐던 아빠와 엄마의 만남에서부터 결혼과 이혼까지 한 가족의 사연이 담겨 있었습니다.

소송 서류에 담겨 있는 내용으로 보면 남편은 술을 마시면 아내를 의심했고 가정폭력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글을 읽어가는 동안 할머니의 삶이 한 장면, 한 장면 사진과 함께 보였습니다. 행복했던 순간이 이 소장으로 인해 산산히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가정폭력으로부터 벗어나 어렵게 결심한 이혼이었지만, 애정 어린 한 사람으로서 전 남편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나봅니다. 소장과 함께 나온 서류에는 엠블란스 이송 영수증과 장례식 비용 청구서가 있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발행된 청구서는 시신 안치비용만 300만원이 넘게 나와 있었습니다.

'삼백? 이건 열흘 넘게 안치되었다는 건데...'

아마 남편이 사망하고 상속인인 자녀들에게 연락이 온 것을 어린 아이들 대신 엄마가 찾아가 처리한 모양이었습니다. 혼자 살다 사망한 전남편은 무연고 사망자가 되었고 이 뒷수습을 모두 전 부인이 처리한 것이었습니다. 시신이송비용과 안치비용, 장례비용까지 모두 고인이 지불한 것은 그녀의 아이들 아빠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사진 속의 행복했던 시절에 대한 마지막 사랑을 정리하려 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수면제 처방 영수증과 진료기록지가 나왔습니다. 엄마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흔적이었는데 진료기록에는 아이 아빠가 떠난 마지막 모습이 너무 끔찍해서 충격을 받았고 그 후 잠을 잘 수 없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아! 고독사 트라우마!'

나는 순간적으로 직감했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그리고 그 기억을 숨기기 위해 공용공간의 물건을 왜 꼭꼭 숨겨왔는지.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에게 아빠의 끔찍한 마지막 모습을 알리지 않으려 노력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정신과 의사에게 비교적 소상히 그날의 기억을 이야기했었던 모양입니다. 의사 앞에 앉아 괴로워하는 고인의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고인이 남긴 유품들 가운데는 양잠점을 한 직업덕분에 옷감을 자르는 가위가 하나 있었습니다. 저는 그 가위를 보며 아마도 고인은 그날의 기억을 가위로 잘라버리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로소 두남매가 엄마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 엄마는 무척 힘들어했어요. 그래서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잘 수 있을만큼 괴로워했어요. 자다가도 악몽에 시달리고 식은 땀을 흘리셨을 지경이었어요.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고독사 유족의 트라우마는 일상 생활을 못하게 만듭니다. 특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구더기가 파먹고 모습과 새까맣게 변해버린 얼굴을 보는 순간 그 기억은 죽을 때까지 자신을 괴롭힙니다. 또한 이 트라우마는 이 일이 자신 때문에 일어났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고 다른 모든 불해한 일이 모두 자신 탓이라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야말로 한 사람의 행복을 송두리째 가져가버립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배송할 물품과 중고로 매각 할 제품이 정해졌고, 재봉틀은 여동생이 보관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유품을 정리하기 전 남매가 현장에서 상담했을 때와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유품을 분류하고 분리하는 작업을 하며 실외 공용공간의 물건도 모두 꺼집어 냈습니다. 모두 전 남편의 것이었습니다. 짐이 많아 일일이 찾아 꺼내는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공용공간에서 나온 수많은 물건들은 아이들 아빠의 삶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후회한다는 메모와 단란했던 가족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글귀, 그리고 액자 속 두 부부가 어린 두 자녀를 각각 안고 찍은 네 가족의 행복한 모습이 담겨 있었습니다.

모두 재활용 분리 작업을 거쳐 빌라의 공동주택 지정장소로 배출되기까지 실외 물품들 대부분은 폐기처리 되었지만 그 속에는 행복했던 모습이 담긴 사진, 연예시절의 편지와 남편의 일기장, 우표수집책과 소지품 몇가지가 고인의 실내 유품에서 나온 귀중품과 함께 박스에 담겼습니다.

'고인은 얼마나 저 물건들을 정리하고 싶었을까?'

깔끔한 그녀의 성격을 감안하면 전남편이 사망한 후 이삿짐처럼 가져온 유품을 수십년째 손대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하면서 힘들어했을 시간들이 그녀를 괴롭혔을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하는 직업을 고인이 조금 빨리 알았더라면 해묵은 감정과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었을 텐데 이제 겨우 어둠을 뚫고 정리되는 모습을 하늘에서라도 아름다운 미소로 바라보고 있길 바랬습니다.

유품 정리가 끝나고 이 가족의 아픈 가정사에 대해 두남매에게 간단히 설명드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삶과 사랑을 기리며, 부모님의 마지막 순간이 지금처럼 남매의 우애로 가득한 기억으로 남기를 바랬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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