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선생님의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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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72회 작성일 24-02-12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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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가까워 실버타운으로 유명한 곳으로 알려진 지역의 빌라에서의 의뢰는 사망 후 일주일 만에 발견된 70대 할아버지의 집이었습니다. 상담 시 받은 주소는 1층이라 예상은 했지만, 빌라 입구에 들어서자 익숙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혼자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냄새를 이웃들이 맡았을 텐데 왜 아무도 이상한 점을 못 느꼈을까?’
빌라에는 1층으로 들어서는 입구가 한 곳이었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포함해 다섯 개의 문이 나있었습니다. 평일 아침 시간인데도 출근하는 사람은 없는지 문은 모두 닫혀있고, 화물택배가 미리 갖다놓은 유품정리 박스를 옮기느라 소란스러웠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것 같은 스산한 분위기가 감돌았습니다.

초인종을 눌러도 반겨줄 사람이 없으니 이 절차를 생략하고 현관 비밀번호를 눌렀습니다. 의뢰인이 시간 맞춰 올 수 없다며 비밀번호를 문자로 보내온 터였습니다.
현관문을 열자 다른 공기를 기다렸다는 듯 두 종류의 냄새가 뒤엉켜 밖으로 밀려나왔습니다. 내가 본 광경은 찌든 담배 냄새를 시신이 썩는 냄새가 덮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빌라 내부로 들어가는 순간 모든 후각기능이 마비되고 말았습니다. 숨쉬기조차 힘든 코를 손수건으로 막고 들어갔지만 어느새 온 몸에는 그 냄새에 포로가 되어 버렸습니다.
현관문 안으로 들어가니 거실 겸 방으로 쓰던 원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화장실 문 옆으로 주방이 있었는데 씽크대가 하얀 색 벽처럼 연결되어 있었고, 택배회사 로고가 찍힌 테이프가 싱크대 위에 놓여있었습니다. 하얀 색 씽크대 문은 니코틴의 찌든 때에 얼룩져 누렇게 변해 있었습니다. 싱크대 아래쪽에는 물류회사의 마크가 찍힌 테이프가 덕지덕지 발라져 있었습니다.
‘음 싱크대 문이 낡았군. 문이 떨어지려는 걸 테이프로 고정해 놓았네. 누가 와서 나사로 달아줬더라면 이 테이프가 필요없었을 텐데...’
저는 혼자 말로 다른 사람이 할아버지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지 않은 점에 대해 투덜거리고 있었습니다.
거실 겸 방 안으로 들어서자 왼쪽 모서리에 놓여 있는 침대 옆으로 아일랜드 식탁이 가운데 책상으로 놓여 있었습니다. 아일랜드 식탁은 아닌데 마치 섬처럼 방 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위로 텔레비전이 한대 놓여있었습니다. TV 주변으로 일곱 개의 머그컵이 놓여있었는데 저마다 다른 물건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 컵들 가운데 두 개에는 담긴 물이 곰팡이와 함께 시커멓게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음, 할아버지는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고 누운 상태에서 손을 뻗으면 모든 일상을 할 수 있도록 물건을 놓아 둔 것이군.’

그런데 침대 위에는 달력을 묶은 연습장이 몇 권 놓여있었습니다. 달력을 이면지로 사용한 것이었는데, 고인은 연습장에 텔레비젼 방송프로그램의 시작 시간과 시청 여부를 거래 장부를 기록하듯 빽빽이 써놓았습니다.
유품을 정리하며 보게 된 사실인데 이 시대에 태어난 분들이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는 건 잘 알지만 달력을 연습장으로 재활용하고, 거기에 깨알같이 글을 써놓을 생각까지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물자가 귀하던 시절에 태어나 ‘근검’과 ‘절약’을 최고의 덕목으로 살았던 세대. 그들은 물건을 잘 버리지 않고 한 평생을 살아오셨습니다. 생활양식과 습관은 좀처럼 바뀌지 않아 알지만 달력을 가위로 잘라 연습장으로 사용한 흔적을 보니 A4용지의 이면지조차 잘 쓰지 않으려는 내 삶의 태도에 대해 미안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사망 후 일주일 만에 발견되었습니다. 무더운 여름이었지만 다행히 시신의 부패는 많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에어컨을 틀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망 후 일주일이 경과한 탓에 고인의 몸에서 흘러나온 체액이 침대 매트리스를 흥건이 적셨고, 고인의 몸에서 나온 기름이 한쪽 벽을 타고 올라가 막을 형성하며 얼룩져 있었습니다.
다른 고독사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더기와 파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벌레마저 있었더라면 시신이 심하게 훼손되었을 텐데 그마나 다행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정말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현장을 의뢰를 한 사람은 둘째 며느리였습니다. 둘째 며느리는 제가 도착한 시간보다 조금 늦게 외제차를 타고 나타났습니다. 남편이 운전해 온 차였습니다. 첫인상은 이들 부부가 아버지를 방치한 불효자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를 어떻게 이런 환경 속에 방치할 수 있을까?'

며느리는 나이가 마흔 쯤 되어보였고 단아한 모습에 마음씨도 착해보였습니다. 마음 속으로 며느리 역시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품을 정리하며 알게 되었는데, 고인에게는 아들이 두 명 있었습니다. 두 아들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났고, 아마도 굳은 일은 둘째 며느리가 도맡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한 칸으로 되어 있는 커다란 원룸에는 씽크대 반대편으로 장롱과 침대 하나가 놓여있었습니다. 컴퓨터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었지만 할아버지의 컴퓨터는 오래된 사양이라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었습니다. 매일 사용했다기보다 컴퓨터를 자판을 연습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물건이 놓여있는 상태를 보면 고인의 생각이 보입니다. 또 물건이 놓여있는 상태를 보면 마치 영상을 뒤로 돌려보는 것처럼 시간을 거꾸로 돌아갑니다. 달력을 자르는 모습, 치매를 걱정해 약을 드시는 모습, 영정사진 속의 할아버지가 매일 어떤 생활을 했는지 눈에 보였습니다.
고인의 짐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베란다에  있던 냉장고를 열어보니 큰 페트병 탄산음료가 종류별로 냉장고 안을 꽉 채우고 있었습니다.

고인의 성격은 깔끔했고 마치 편집증이 있는 것처럼 가재도구는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고인은 침대 곁에 모든 물건을 놓아두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일랜드 식탁을 책상으로 사용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텔레비젼 주변으로는 머그컵이 여러개 놓여있었고, 컵 안에는 볼펜과 싸인펜 등이 종류별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것들을 담아 놓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침대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기위해 모니터를 얹혀놓을 테이블이 필요하셨구나!’

‘할아버지는 새벽부터 밤까지 몇 개까지 텔레비전을 시청했구나!’

달력을 잘라 이면지로 사용해 만든 연습장에는 새벽 4시부터 시작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빼곡히 써있었고, 각 방송이 재방송인지 또는 본방송인지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마치 신문의 방송 편성표처럼 요일별로 나누어 꼼꼼히 기록되어 있었는데 각 페이지마다 기호로 메모가 적혀져 있었습니다. 고인이 신세대 할아버지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치매를 무척 걱정하신 듯 합니다.

달력 옆으로 화이트보드가 하나가 벽에 걸려 있었는데 아침과 저녁으로 나누어 자석을 붙여 당일 약을 드셨는지 드시지 않았는지를 체크하고 있었습니다. 스스로도 자주  깜빡하는 기억을 인지하신것 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날짜로는 10월 15일이었는데 화이트보드판의 요일과 달력의 요일이 달랐습니다. 화이트보드에는 분명 10월 15일이 월요일로 표기되어 있는데 달력에는 15일이 금요일이었습니다.
‘아! 3년...’
계산을 해보니 화이트보드의 날짜는 3년 전의 것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오랫동안 치매를 앓고 계셨구나! 그런데 혼자 해결하려고 하셨네!’
침대 아래쪽에서  검정색 가방이 하나 발견되었습니다. 가방 속에는 꽤 많은 소지품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씩 꺼내보니 팬티 3장, 런닝 3장, 새양말 3개, 핫팬츠, 허리요대, 홑이불이 들어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 가방에 왜 속옷을 준비해 놓았을까? 어디로 여행을 떠나려 했을까?



‘아! 요양병원.... 고인은 요양병원으로 갈 계획을 하고 계셨구나.'

‘몸이 불편하다 생각될 때 가방을 곧바로 챙겨갈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하셨구나! 혼자서는 이걸 할 수 없었을텐데... 이 중요한 문제를 왜 혼자 해결하려 하셨을까?‘

사람은 누구나 생애 마지막이 오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 많습니다. 손발의 기능을 잃게 되고, 말을 잃게 되고, 귀만 열린 채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잘 부탁을 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할아버지는 스스로 하려고 무척 애쓰셨지만 자신이 언제 정신을 잃었는지 모르니 이렇게 고독사로 발견되었습니다.

혹자들은 고독사를 주변에서 돌봐주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인처럼 자신의 마음을 닫아버린 분들은 가까운 사람조차 들어 갈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잠깐이었지만 불효자라고 생각한 아들과 며느리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며느리는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아버님은 제가 다가가려 노력해도 마음을 주지 않았습니다. 평생 제가 다가서려 해도 마음을 열어주지 않으셨어요. 저는 시어머니와는 참 가깝게 지냈어요.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빈자리를 제가 채워드리려 노력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그동안 제가 참 힘들었어요. 그런데 돌아가시고 나서도 제 가슴에 이렇게 못을 박아버리셨네요. 이렇게 돌아가셔서 저는 이제 평생 불효자가 되어버렸어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안타깝게도 저는 눈물을 흘리는 두 분 앞에서 함께 울어주는 것 밖에 해드릴 것이 없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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